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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과대" 에 대한 검색 결과로서 총 9건 이 검색되었습니다.

건강정보 (1)
[건강톡톡][2편]'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가장 좋은 의사는 따뜻한 보호자

안녕하십니까? 환자에 보다 가까이, 국민건강지킴이 서울대학교병원 팟캐스트 ‘건강톡톡’ 저는 서울대의대의 김붕년 교수입니다. 오늘 주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참으로 참담하고 끔찍한 최근의 사건 사고를 경험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이나, 정신적인 고통, 불안, 공포 등 다양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그런 문제들을 포괄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겪고 계신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손님으로 서울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주 교수님이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개념적인 부분들이 애청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질환인지 소개해주시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면 이름 자체에 스트레스가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트라우마에 의해서 생기는 병이지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스트레스는 그로 인해 힘들거나 고통받더라도 일상적인 대처방법으로 견뎌나갈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시험을 는 것, 경제적으로 손실을 보는 것, 타인과의 갈등과 같은 것인 반면 트라우마는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대처능력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안타까운 세월호 사건과 같이요. 또는 해결이 됐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공포를 느꼈다든지 큰 상해를 입을 만한 위험에 놓였다든지 이런 경우를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이라든지 성폭행, 화재 등으로 인해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경에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심각한 외상을 받았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는 거겠죠. 그런데 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과거에는 크게 인식되지 못하다가 최근 우리 사회가 트라우마의 연속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사건 사고 특히 재난과 관련된 문제들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세월호 참사라던가요.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증상도 다양할 것 같은데요. 어떤 증상들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트라우마를 경험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 달 이내에 슬픔, 두려움, 공포 등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증상들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머릿 속에서 사고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낮에는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들이 자꾸 생각이 나고 밤에는 그것이 꿈으로 나타나 악몽을 꾼다든지, 비슷한 자극이 있을 때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고통을 다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재경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자꾸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깜짝 깜짝 놀라게 되고 잠을 잘 못자고 짜증도 심해집니다. 또 그 외에 여러 가지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그런 내용들은 주로 성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들을 잘 설명해주셨는데, 제가 담당하고 있는 소아청소년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에 다양한 증상을 보입니다. 성인기 증상들 이외에도 아이들은 엄마와의 애착의 붕괴로 인한 불안증세가 굉장히 큽니다. 즉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 합니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갑자기 학교를 못가게 되지요. 그 이유 중 중요한 것이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힘들어서라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통해서 이미 성취한 것들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밤에 오줌을 싸거나, 언어적인 능력이 위축되어서 적절한 언어표현 능력이 감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건강할 때 아이들이 다양하고 흥미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많이 하던 아이들이 이런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급속도로 놀이 양이 줄어들 뿐 아니라 놀이의 내용도 사고와 관련된 놀이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외상 후 스트레스의 재경험, 회피, 과감작 등 이런 증상들이 아이들한테 형태는 다르지만 거의 똑같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우리가 외상 후 스트레스 문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노인까지 사건을 겪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즉 부분적으로는 정상적이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너무 강렬하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도움이나 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어떻습니까. 똑같은 사고를 겪더라도 1/3 정도는 굉장히 심하고, 1/3 정도는 겪었다가 사라지고, 1/3 정도는 또 아예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성향이나 특징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조금 더 많이 증상 발현이 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것이 어떤 사고를 겪었는가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같은 세월호 사건 또는 같은 전쟁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사실 실제로 개인이 겪는 것은 다 다를 수 있거든요. 굉장히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을 수도 있고 혹은 아닐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고의 내용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개인적인 성향도 역시 중요합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성격적으로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사고를 자신이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역시 나는 힘이 없구나’ 라거나 ‘세상은 내 편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붕년 교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 어렸을 때 외상을 겪은 사람이 다시 외상을 겪을 때에는 ‘내가 극복하려고 했지만 세상은 내 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만약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즉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것이 잘 안될 경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소아청소년 같은 경우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위협적인 사건, 사고를 겪은 뒤에 그 직후부터 바로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2~3개월 정도는 아무런 불안, 공포, 불면, 심각한 우울 상태가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그 이후에 다시 인지적인 해석을 덧붙이거나 또는 다른 계기에 의해서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심각한 불안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소아 청소년같은 경우에는 7~8살에 성폭행을 당한 아이가 10대 초반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10대 중반, 특히 청소년기에 들어가면서 부터 자신의 성적인 변화들이 생기고 성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성행위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굉장히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양상으로 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불안장애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있긴 합니다만 이것이 불안장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장기적으로 봐서는 다양한 우울증, 조울병의 일부가 되는 경우도 있고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인격장애 또는 성격장애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조기치료 또는 조기개입이 어떤 면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어떤 면에서 봤을때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정상적인 반응일 수 있는데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분들을 모두 환자로 낙인 찍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시나요? 사고 초기에 환자로 낙인찍지 말자는 의견은 많이 있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을 그냥 두었을 때 나중에 어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정신과적으로 가장 심각한 사건이 교감선생님의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감선생님이 자살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신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전문가이니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으라고 하는 것은 부딪힐 수 있는 부분이지요. 재난 상황에서는 우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이 생겼을 때 바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진료나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면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교감선생님의 자살과 같은 문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재난에 이어진 비극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큰 재난을 겪고 나서 그로인해 고통받는 분들의 고통의 권리도 인정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한 개인이 자신의 인생사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사건을 경험할 때 그분들이 그 고통을 스스로 충분히 순화시키고 본인의 인생경험으로 통합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시간과 그분 자신의 자유를 드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물론 그분이 경험하는 증상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통합점이 어려울 정도가 되면 말씀하신대로 그분이 필요로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신뢰를 쌓아가면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외상 후 스트레스나 애도반응 혹은 갑작스러운 사별반응을 겪는 분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본인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들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본인만의 방식’ 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울면서 토로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어떤 분들은 다른 방법 -활동을 많이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토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을 계속 피하려고 하시는 분들은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결국은 떠나간 사람들이나 사고를 생각하면서 ‘그 또한 인생의 일부였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현재는 그때 사건을 겪었던 곳과 다른 안전한 곳이다’ 라는 것들이 통합이 되어서 외상을 겪은 사람 중에서 많은 분들이 외상 후 성장을 한다고 요즘은 얘기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성장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 분들에게 성장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 다르거든요. ‘힘이 될거야, 다 극복할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나 공감을 못한다는 다른 표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기다려주고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지요.(상대가)힘든 것을 얘기하면 두 가지 방식으로 실수를 할 수 있는데요, 억지로 힘든 것을 얘기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힘든 것을 얘기하려고 하면 말을 못하게 피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받아주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재촉하지 않되 피하지 않는 것,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재난을 겪은 분들의 주변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인 것 같습니다. 100% 동의합니다. 자연스럽게 료에 대한 얘기가 연결이 되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사실 초기단계의 위급상황에서 심리치료 혹은 심리적인 료를 담당하시는 전문가들이 다른 료법에 대해서는 익숙할 지라도 이 외상 후 스트레스 문제를 가진 분들의 료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꽤 있는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료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하지 말아야하는 것들이 있지요. 외상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하지 말아야하는 것,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강요하지 않는 것, 피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외에도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상대를)대하는 것, 또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공감을 해주시는 것이 좋은데 그분들이 극복해서 이제 좀 웃어 보려고 하는데 옆에서 울고 있는 것은 도움이 안되고 그렇다고 그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뚝뚝하게 전혀 공감 안되고 동떨어져 있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분들보다 조금 덜 슬퍼하는 정도, 그것이 제일 큰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도 웃을 권리가 있거든요. 그분들이 웃고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절대로 죄책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겪고 있으니까 약한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을 다 잊어야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억압, 억제하라는 것인데 그것이 몸으로 다 나오게 됩니다. 잠을 못자게 되고 머리가 아프게 되고... 결국 옛날 어른들이 말하는 ‘홧병’ 이라는 신체적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 잊으라고 강요하게 되면 그분들 입장에서 ‘날 이해하지 못한다, 믿을 사람이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료를 방해하는 상황까지 될 수가 있는 것이네요. 그런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료방법들이 있을 텐데요, 현재까지 근거가 있는 또는 과학적으로 료효과가 정립되어있는 료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특히 성인들에게 활용되고 있는 료법들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시지요. 약물치료 같은 경우에는 항우울제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약물적인 료로써 예전에는 ‘디브리핑’이라고 해서 (외상)초반에 얘기하게 했는데 지금은 좋은 료방법이라고 알려지지 않고 특히 동양문화권에서는 더 안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억지로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외에 ‘EMDR’ 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료가 있습니다. 외상을 떠올리면서 극복하게 하는 것인데요, 결국 상담치료에서의 기본은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료는 (외상)직후보다는 1~2개월 후에 료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근원적인 료가 되기도 합니다만 부작용이 심할 수도 있습니다. 외상을 떠올리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안전하구나, 사건을 떠올려도 내가 괴롭지 않구나’ 하는 것을 훈련하는 방법인데, 외상을 떠올리자 ‘역시 괴롭구나, 힘들구나’ 하는 것만 훈련이 된다고 하면 오히려 악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외상 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경우 함부로 료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지요, 료라고 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내용을 책을 통해서 알거나 강의를 통해서 들었다고 해서 결코 사용할 수 없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환자의 반응, 그리고 그 반응에 따른 적용가능성, 적용이후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 등을 전문적으로 다 할 수 있는 전문의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외상을 겪고 난 뒤에 외상에 대한 조절 내지는 자기관리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조금 더 적극적인 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EMDR’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상당히 흥미로운 방법입니다. 아이무브먼트, 눈을 움직여서 정보처리를 다시 도와줌으로써 과거의 외상으로부터 고정되어 있고, 고착되어있는 부분들을 풀어내고 그것을 덜어드리는 방식인데 지금 나와있는 여러 가지 연구들로 확인된 것은 ‘EMDR’ 방법이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외상 중심 인지행동 료도 효과적이라고 나와 있어서 이 두가지 모두 전문의사에 의해서 료되는 것이 좋겠고, 약물치료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료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해야겠지만 그 또한 전문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외상과 관련해서 많이 힘들어하는 청취자 분들이나 주변에 외상을 겪고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실 터인데요, 그분들을 도와주는 방법을 말씀해주셨지만 핵심적인 부분을 다시 정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방송을 듣는 분들 중에 심각한 외상을 겪고 있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재경험이나 회피, 과감작 등의 증상을 겪고 있거나 그로 인해 인생에 지장이 있다고 -사실 사고는 끝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세상을 잘 못 믿는다거나 자기 자신도 잘 못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을 못 믿으니까 원망하고 화를 내고 자기를 못 믿으니까 창피하고 죄책감도 느끼는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일단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으셨으면 좋겠고, 자신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옆에 계신 보호자분들은 억지로 잊으라거나 다 이해한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는 전문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가끔은 좋은 보호자가 전문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믿을 수 있는 자기편이 병원으로 모시고 와야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내용정리] 가족의 역할, 즉 공감해주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가족의 역할이 어떠한 약물치료, 어떠한 인지행동치료만큼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상을 겪고 힘들어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조언을 드리고 싶은 것은 부모님들이 먼저 감정조절을 하셔야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가 겪은 사건이나 상처에 대해서 마음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앞에서만큼은 부모님들이 과도하게 불안해하시거나 또는 너무나 슬퍼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오히려 아이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과대한 해석 또는 과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가 느끼는 것에 대해서 공감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 아이가 더 불안해지거나 더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고 적극적인 료와 료를 위한 도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석주 교수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조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서울대학교병원 팟캐스트 건강톡톡에서는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주 교수님을 모시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서울대학교병원 홈페이지 ‘SNUH 건강톡톡’에서 다시 들으실 수 있고요. 게시판에 궁금한 점 남겨주시면, 방송에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24시간 열려있는 진료소, 서울대병원 팟캐스트 ‘건강톡톡’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붕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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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93% 2014.07.02
병원소개 (6)

아름다운 죽음, 웰다잉을 위한 세 의사의 대담평생 죽음을 가까이서 본 의사들의 이야기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출간쫓기는 한국인, 죽음에 대한 성찰 필요… 준비하고 죽음 맞는 게 존엄한 것웰빙(Well-being) 열풍에 이어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까지 죽음은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일 하느라, 자식 키우느라 쫓기며 사는 탓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겨를도 없을뿐더러 막연한 공포심 때문에 죽음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막상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면 두려움에 발버둥 면서 제대로 삶을 정리하지 못한 채 떠나기 마련이다.이러한 죽음문제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던 의사 세 명이 나섰다. 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죽음교육이 얼마나 절실한지 툭 터놓고 나눈 이야기를 대담집,「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로 묶어낸 것이다.임상의로서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접하면서 존엄사에 관한 연구를 해 온 원로 의학자 김건열 前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죽음 문제에 천착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죽음학 강의를 하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다양한 책의 출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죽음 문화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유은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저자들은 한결같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수십 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인간된 도리이고,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이지만 “현실에서는 허겁지겁 죽음을 당하고, 병원에서는 존엄을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을 맞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죽음 준비를 위한 세 의사의 대담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에는 ▲연명치료와 완화의료, 안락사와 존엄사 등 의료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죽음 ▲근사체험 등 죽음의 순간 ▲의식의 체외이탈과 윤회 등 사후세계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의 삶의 변화 등이 여러 사례를 곁들여 소개되어 있다.특히, 저자들은 의료현장에서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숨기는 바람에 환자 스스로 인생을 정리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떠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 적절한 통증 관리를 받으면 의외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실제 '말기 암을 알리는 문제에 대한 환자와 가족의 입장'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진실을 알기 원하느냐는 물음에 암 환자 96%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암 환자 72%가 가능한 빨리 알려줄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건열 前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에게 병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환자가 적극적인 료를 받아 더 효과가 좋을 수 있고,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면서 “그러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존엄하게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책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근사체험, 죽음이후의 삶, 윤회에 대해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의학의 발달로 알게 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사후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 장엄하고도 장대한 세계 … 우리가 죽어서 육신을 벗어나면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게 되는데, 진동하는 주파수에 따라서 비슷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죠. … 즉, 에너지 형태로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본문 중) 이 책의 말미에는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저자들의 모습도 알 수 있다. 장기기증 서약서, 사전의료의향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놓는다든지, 장례식에 대해 가족들과 상의하는 모습에서 독자들도 구체적으로 죽음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정현채 교수는 “우리 육체는 죽으면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우리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지 말고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같이 살던 때를 얘기하고 기념하라고 두 딸에게 얘기해 놓았어요. 그래도 마음이 쓸쓸하면 우리가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거닐어도 좋고, 작은 꽃다발 하나씩 준비해서 서로 건네줘도 좋겠다고 했지요.”(본문 중)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죽음은 꽉 막힌 돌담이 아니라 열린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인식을 받아들이면서 죽음 준비를 시작함으로써 죽음을 또 다른 삶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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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0% 2014.10.23

우리는 감사한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통합 실험동물위령제 개최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원장 방영주)은 12월 20일(금) 오후 3시 의생명연구원 1층 대강당에서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희생된 동물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연건캠퍼스 통합 실험동물위령제' 를 열었다.올해로 9회째인 이번 행사에는 의과대학 실험동물실, 의생명연구원 전임상실험부, 특수생명자원센터, 의대 종합실습실 등 기관의 교수와 연구자 200여명이 참석하였다. 참석자들은 실험동물에 대한 묵념을 하고 추모 동영상을 감상하였다.상영된 영상에 따라 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연구자들과 장난을 는 고양이의 모습에서는 웃음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누렁이의 애절한 눈빛에서는 슬픔이 흘렀다. 이후 모든 참석자들이 위령제 제단에 나와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제단에는 돼지머리 등이 제물로 쓰이는 일반 위령제와 달리 8가지 종류의 동물 사료와 '럭셔리 도그(luxury dog) 쇠고기' 라 적힌 통조림과 대추, 감, 바나나, 배, 배추 등이 놓였고 제단 중앙에는 '우리는 감사한다' 라고 쓰인 패가 놓였다.방영주 원장은 “연건캠퍼스 동물실험으로 매년 많은 동물이 희생되고 있다” 며 “인류의 건강증진에 희생된 많은 동물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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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0% 2013.12.23

암은 완치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다. 암 료가 끝났다고 해서 더 이상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한번 암에 걸린 사람은 재발이나 다른 부위에 새로운 암(이차암)이 생길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 또한, 암 발병 전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암 료 중 부작용으로 인해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쉽다. 이차암이나 만성질환은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율을 감소시키는 주요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암 료 후의 건강관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해온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가 암 경험자를 위한 체계적인 건강관리법을 제안한다. 이 책은 암 경험자가 암 재발, 이차암,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 왜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암 료 이후 체계적인 건강관리법을 따른다면 암 경험자도 발병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암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법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로,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을 위한 믿을 수 있는 건강관리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 지음신국판 | 2도 | 240쪽 | 값 15,000원|2013년 6월 1일 발행 ISBN 979-11-85020-02-0 13510 | 국내도서 건강 건강 일반 ■ 출판사 리뷰 암 료 후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실천하면 암을 경험하기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암은 이제 '생존하는 질병'이 아닌 '경험하는 질병'이다. 과거에는 '암=사망'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어, 일단 암으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의학기술과 약제의 발달로 암은 이제 생존의 문제를 넘어 료 후의 '건강'을 고민하는 '경험하는 질병'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 암, 암 경험자 100만 명 시대다. 과거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아졌지만, 암 완치율 역시 높아져, 암 료 후 5년이 지나 완 판정을 받은 경우가 64%에 달하고 있다. 암을 겪은 후 장기 생존 기간이 증가할수록 처음에 발생한 암이 아닌, 새로 생긴 암이나 만성질환과 같은 다른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한다. 이는 암 료 이후의 건강관리가 그만큼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암을 한번 겪은 사람은 일반인보다 암 검진을 더 잘 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당수의 암 경험자들은 처음에 발생한 암의 재발에 대해서만 관리하면서 모든 암 검진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암 경험자는 일반인보다 새로운 암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또한, 암 경험자들은 누구보다도 건강관리를 잘할 것 같지만, 건강한 생활습관을 잘 유지하는 경우는 5%에 그쳤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암 료가 끝났다고 건강관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암 료가 끝나는 시점부터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발병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암 경험자란? 암 경험자란 암을 경험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과거에는 암 발병 후 5년이 지나 완 판정을 받은 경우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 료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일차적인 암 료가 끝난 이후부터 '암 경험자'라고 한다. 심지어 암에 걸린 당사자 외에도 그 가족까지 영향을 받게 되므로 암 환자의 가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암 경험자를 위한 건강관리법은 따로 있다! 국내 최초 암 료 후 건강관리만을 전담해온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의 건강관리법 암 료 후에는 재발이나 전이 또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근거 없는 속설에 휘둘리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전문가가 제시하는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따른다면 암을 경험하기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에 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이다. 암 료 이후의 건강관리만을 연구해 온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암 료 후의 건강관리법을 제시하고 있다.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암종별 재발과 전이 증상, 이차암 검진과 예방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 암종별로 발생하기 쉬운 만성질환과 관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암 경험자는 이차암이나 만성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 암 료가 끝났다고 해서 혹은 5년 완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평생 건강을 담보 받은 것도, 더 이상 관리가 필요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번 암에 걸린 사람들은 암 재발이나 전이 외에도 이차암(처음 생긴 암과 다른 부위에 새로 생긴 암)의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크다. 또한 암 경험자는 일반인보다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당뇨병 등과 같은 만성질환이 생기기 쉽다. 이는 암 료로 인한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생활습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암에 걸린 사람은 이미 흡연, 음주, 운동 부족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생활습관은 전반적인 신체 상태에도 영향을 주어, 암 진단 전부터 이미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질병이 생기기 쉬운 조건을 갖고 있어 암 료 후에도 일반인보다 만성질환에 걸리기 쉽다. 중앙암등록사업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암 료 후 5년 이상 생존자 중 24%는 암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였고, 10년 이상 생존한 경우 그 수치가 40%까지 높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 생긴 암의 료를 무사히 마쳤다고 해도 이차암이나 만성질환을 예방, 관리하지 못한다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실천해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은 또 하나의 항암치료다. 생활습관에 따라 암이 재발하거나 다시 새로운 암이 생기거나,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과 같은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지속적인 흡연, 운동 부족, 비만일 때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일반적으로 와인 1~2잔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암 경험자에게는 하루 한 잔의 술도 암 발생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암 환자에게 좋다고 알려진 채식의 경우 단백질 부족으로 인해 영양 불균형 상태를 초래해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잘못 알려졌거나 혼동하기 쉬운 건강 상식을 바로잡아 주면서, 암 경험자를 위한 맞춤 건강법을 제시한다. 암 료 후에 왜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 암 재발, 이차암,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왜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암 료 중에는 료가 우선이라 생활습관 개선은 뒤로 밀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암 료이며, 이것은 수술이나 항암약물치료, 방사선치료와는 또 다른 암 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추천사 암 예방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암 료를 끝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암 재발, 이차암과 성인병 예방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된다. 암 경험자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건강법을 담고 있어 암 환자를 위한 건강 지킴이가 될 것이다. 구범환 대한암협회 회장 근거 없는 건강 정보가 판을 는 세상에, 암 료 후 건강관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통해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에 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다. 노동영 서울대학교암병원장 목차만 보고 실천해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책! 지금까지 나온 암 환자를 위한 건강관리법 책 중 가장 보석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단 암 환자뿐만 아니라 암을 예방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도 건강 나침반이 되리라 믿는다. 서혜경 피아니스트, 한국유방건강재단 홍보대사 사형 선고와도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치료만 마치면 모든 료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암에 비해 유방암은 생존율이 긴 반면 재발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가 시작이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 막막했다. 암 료 후에 필요한 내용들을 잘 정리한 이 책은 암을 이겨내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고경자 한국유방암예방홍보강사회 회장 ■ 이 책의 저자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 서울대학교암병원은 국내 최초로 암 경험자의 건강관리를 전담하는 암건강증진센터를 2011년에 개소하였다. 암건강증진센터는 암 료를 넘어, 암 경험자와 가족 모두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 경험자를 위한 맞춤형 암 검진과 암종별로 흔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암 경험자의 궁극적인 건강 증진을 위해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여 더 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또한, 검진 및 건강 증진 분야의 전문의인 가정의학과 교수들은 암 경험자의 체계적인 건강관리와 암 경험자를 위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암병원 http://cancer.snuh.org 조비룡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와 암건강증진센터의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 증진' 프로그램 개발과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KBS 비타민, 〈생로병사의 비밀, MBC 라디오 닥터스 등 다수의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으며, 저서로는 『우리 가족 건강 주치의』, 『근거 중심의 암생존자 관리』 등이 있다. 신동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암 경험자의 이차암 검진'에 관련한 연구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연수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 및 암건강증진센터에서 암 환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건강관리와 금연 료를 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에서 암 경험자 관련 정책 연구를 수행해 왔으며, 현재도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12년 서울대학교의과대학/서울대병원이 수여하는 젊은 연구자상을 받았다. 암 환자의 건강 증진 및 관리에 관한 논문을 40편 이상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최호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포츠의학 전문의이자 보디빌딩 전문 지도자이기도 하다. 암건강증진센터에서 암 경험자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환자 맞춤형 운동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손기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암건강증진센터와 건강증진센터에서 건강노화 클리닉, 간병가족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의학과 간병가족의 건강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저서 로는 『근거 중심의 암생존자 관리』가 있다. 오범조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임의로 재직하였으며, 건강증진센터 진료교수를 거쳐 현재 보라매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진료 및 건강검진센터 판정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미국 엠디앤더슨병원에서 암 환자의 완화 의료, 암 생존자의 건강관리에 관한 단기 연수 후 암 환자의 건강 유지와 삶의 질 향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이 책의 목차 Part 1. 암 료 후 건강관리법은 따로 있다 - 암은 이제 '생존하는 질병'이 아닌 '경험하는 질병' 암 경험자 100만 명 시대! 암 완치율, 생각보다 더 놀랍다! 암은 이제 평생 관리하며 함께 살아야 할 만성질환과 같다 - 장기 생존으로 가기 위한 관문, 료 후 5년 진짜 료는 지금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체계적인 건강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맡아줄 주치의가 필요하다 - 암 료 후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인 암 료가 끝난 암 경험자의 사망 원인 3대 위험 요인을 관리하라 - 건강한 생활습관은 또 다른 항암치료다 암 경험자의 건강은 생활습관이 좌우한다 생활습관은 암에도 영향을 미친다 암 경험자가 지켜야 할 건강 생활습관 Special page. 암 료 후 직장으로 복귀하기 Part 2.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인을 관리하라 - 장기 생존을 위한 첫 걸음, 암 재발 예방 재발, 막을 수 있을까? 알아 두자, 재발과 전이 증상 조기 발견을 위한 지속적인 추적관찰 재발 관련 기타 주의 사항 - 새로운 암, 이차암의 검진 암 경험자는 새로운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왜 암 경험자가 새로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까? 원발암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암 경험자의 이차암 검진 주요 암종별 이차암 검진 및 예방을 위한 고려 사항 - 암 료 후 더 주의해야 하는 만성질환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암 경험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암 경험자의 만성질환은 더 위험하다 암 경험자는 오히려 만성질환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 가장 흔한 동반 질환 고혈압 많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당뇨병 심혈관질환 위험 요인, 이상지질혈증 여성과 남성 모두 조심, 골다공증 그 외 만성질환 Special page. 암 경험자의 피로 관리 Special page. 암 경험자 가족의 암 관리 Part 3. 장기 생존은 건강한 생활습관에 달렸다 - 가장 중요하다! 무조건 금연 흡연은 암 경험자에게 더 나쁘다 금연은 의지만으로는 어렵다 기꺼이 금연 료 약제의 도움을 받아라 - 매일 한 잔도 해로울 수 있다! 음주 매일 술 한 잔은 건강에 이롭다? 술 한 잔도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정 암 경험자에게는 금주가 필수다 술은 끊는 게 최선이다! - 건강의 지표, 적정 체중을 유지하라 암 경험자에게 체중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암 경험자에게 적정 체중은 '생존' 그 자체다! 암 료 후 체중이 증가했다면 어떻게 할까 암 료 후 체중이 감소했다면 어떻게 할까 건강 체중을 회복했다면 근육량을 늘린다 - 항암 식습관이 중요하다! 음식 암 예방에 있어 음식은 중요한 요인이다 단일 음식으로 하는 영양 계획은 피하라 건강식품이나 보충제도 암 경험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료 후 식습관 관리의 목표는 건강 체중 유지에 있다 영양 계획은 Anti-FAT(Food-Amount-Time의 역순)으로 해보자 모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골고루 먹는다 매일 5가지 이상의 과일과 채소를 먹는다 저지방 식사, 이왕이면 당화지수가 낮은 음식을 선택한다 - 장기 생존율을 높여라! 운동 운동이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율을 높인다 암 료 후 나타날 수 있는 불편한 증상을 개선시킨다 암 료 시기별 고려해야 할 것들 암 경험자가 해야 하는 3가지 운동 동반된 질환의 유무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 Special page. 암 경험자의 예방접종 Special page. 노인 암 경험자의 건강관리 항암 음식에 관한 궁금증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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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 1% 2013.05.29

암은 완치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다. 암 료가 끝났다고 해서 더 이상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한번 암에 걸린 사람은 재발이나 다른 부위에 새로운 암(이차암)이 생길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 또한, 암 발병 전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암 료 중 부작용으로 인해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쉽다. 이차암이나 만성질환은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율을 감소시키는 주요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암 료 후의 건강관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해온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가 암 경험자를 위한 체계적인 건강관리법을 제안한다. 이 책은 암 경험자가 암 재발, 이차암,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 왜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암 료 이후 체계적인 건강관리법을 따른다면 암 경험자도 발병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암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법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 로,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을 위한 믿을 수 있는 건강관리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 지음 신국판 | 2도 | 240쪽 | 값 15,000원|2013년 6월 1일 발행 ISBN 979-11-85020-02-0 13510 | 국내도서 > 건강 > 건강 일반 ■ 출판사 리뷰 암 료 후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실천하면 암을 경험하기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암은 이제 '생존하는 질병'이 아닌 '경험하는 질병'이다. 과거에는 '암=사망'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어, 일단 암으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의학기술과 약제의 발달로 암은 이제 생존의 문제를 넘어 료 후의 '건강'을 고민하는 '경험하는 질병'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인 사망 원인 1위 암, 암 경험자 100만 명 시대다. 과거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아졌지만, 암 완치율 역시 높아져, 암 료 후 5년이 지나 완 판정을 받은 경우가 64%에 달하고 있다. 암을 겪은 후 장기 생존 기간이 증가할수록 처음에 발생한 암이 아닌, 새로 생긴 암이나 만성질환과 같은 다른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한다. 이는 암 료 이후의 건강관리가 그만큼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암을 한번 겪은 사람은 일반인보다 암 검진을 더 잘 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당수의 암 경험자들은 처음에 발생한 암의 재발에 대해서만 관리하면서 모든 암 검진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는 한다. 암 경험자는 일반인보다 새로운 암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 또한, 암 경험자들은 누구보다도 건강관리를 잘할 것 같지만, 건강한 생활습관을 잘 유지하는 경우는 5%에 그쳤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암 료가 끝났다고 건강관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암 료가 끝나는 시점부터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발병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암 경험자란? 암 경험자란 암을 경험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과거에는 암 발병 후 5년이 지나 완 판정을 받은 경우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 료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일차적인 암 료가 끝난 이후부터 '암 경험자'라고 한다. 심지어 암에 걸린 당사자 외에도 그 가족까지 영향을 받게 되므로 암 환자의 가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암 경험자를 위한 건강관리법은 따로 있다! 국내 최초 암 료 후 건강관리만을 전담해온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의 건강관리법 암 료 후에는 재발이나 전이 또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근거 없는 속설에 휘둘리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전문가가 제시하는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따른다면 암을 경험하기 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에 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이다. 암 료 이후의 건강관리만을 연구해 온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암 료 후의 건강관리법을 제시하고 있다.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암종별 재발과 전이 증상, 이차암 검진과 예방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 암종별로 발생하기 쉬운 만성질환과 관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암 경험자는 이차암이나 만성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 암 료가 끝났다고 해서 혹은 5년 완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평생 건강을 담보 받은 것도, 더 이상 관리가 필요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번 암에 걸린 사람들은 암 재발이나 전이 외에도 이차암(처음 생긴 암과 다른 부위에 새로 생긴 암)의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크다. 또한 암 경험자는 일반인보다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당뇨병 등과 같은 만성질환이 생기기 쉽다. 이는 암 료로 인한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생활습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암에 걸린 사람은 이미 흡연, 음주, 운동 부족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생활습관은 전반적인 신체 상태에도 영향을 주어, 암 진단 전부터 이미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질병이 생기기 쉬운 조건을 갖고 있어 암 료 후에도 일반인보다 만성질환에 걸리기 쉽다. 중앙암등록사업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암 료 후 5년 이상 생존자 중 24%는 암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였고, 10년 이상 생존한 경우 그 수치가 40%까지 높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 생긴 암의 료를 무사히 마쳤다고 해도 이차암이나 만성질환을 예방, 관리하지 못한다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올바른 건강관리법을 실천해야 한다. 건강한 생활습관은 또 하나의 항암치료다. 생활습관에 따라 암이 재발하거나 다시 새로운 암이 생기거나,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과 같은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지속적인 흡연, 운동 부족, 비만일 때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일반적으로 와인 1~2잔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암 경험자에게는 하루 한 잔의 술도 암 발생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암 환자에게 좋다고 알려진 채식의 경우 단백질 부족으로 인해 영양 불균형 상태를 초래해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잘못 알려졌거나 혼동하기 쉬운 건강 상식을 바로잡아 주면서, 암 경험자를 위한 맞춤 건강법을 제시한다. 암 료 후에 왜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 암 재발, 이차암,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왜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암 료 중에는 료가 우선이라 생활습관 개선은 뒤로 밀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암 료이며, 이것은 수술이나 항암약물치료, 방사선치료와는 또 다른 암 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추천사 암 예방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암 료를 끝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암 재발, 이차암과 성인병 예방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된다. 암 경험자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건강법을 담고 있어 암 환자를 위한 건강 지킴이가 될 것이다. 구범환 대한암협회 회장 근거 없는 건강 정보가 판을 는 세상에, 암 료 후 건강관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통해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기존의 료 중심의 암 관리를 넘어 료 이후의 장기적인 건강관리에 대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건강서다. 노동영 서울대학교암병원장 목차만 보고 실천해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책! 지금까지 나온 암 환자를 위한 건강관리법 책 중 가장 보석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단 암 환자뿐만 아니라 암을 예방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도 건강 나침반이 되리라 믿는다. 서혜경 피아니스트, 한국유방건강재단 홍보대사 사형 선고와도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방사선치료만 마치면 모든 료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암에 비해 유방암은 생존율이 긴 반면 재발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가 시작이구나' 하는 마음에 너무 막막했다. 암 료 후에 필요한 내용들을 잘 정리한 이 책은 암을 이겨내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고경자 한국유방암예방홍보강사회 회장 ■ 이 책의 저자 서울대학교암병원 암건강증진센터 서울대학교암병원은 국내 최초로 암 경험자의 건강관리를 전담하는 암건강증진센터를 2011년에 개소하였다. 암건강증진센터는 암 료를 넘어, 암 경험자와 가족 모두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 경험자를 위한 맞춤형 암 검진과 암종별로 흔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암 경험자의 궁극적인 건강 증진을 위해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여 더 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또한, 검진 및 건강 증진 분야의 전문의인 가정의학과 교수들은 암 경험자의 체계적인 건강관리와 암 경험자를 위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암병원 http://cancer.snuh.org 조비룡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와 암건강증진센터의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 증진' 프로그램 개발과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 KBS <비타민>, 〈생로병사의 비밀>, MBC <라디오 닥터스> 등 다수의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으며, 저서로는 『우리 가족 건강 주치의』, 『근거 중심의 암생존자 관리』 등이 있다. 신동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암 경험자의 이차암 검진'에 관련한 연구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연수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 및 암건강증진센터에서 암 환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건강관리와 금연 료를 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에서 암 경험자 관련 정책 연구를 수행해 왔으며, 현재도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12년 서울대학교의과대학/서울대병원이 수여하는 젊은 연구자상을 받았다. 암 환자의 건강 증진 및 관리에 관한 논문을 40편 이상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최호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포츠의학 전문의이자 보디빌딩 전문 지도자이기도 하다. 암건강증진센터에서 암 경험자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환자 맞춤형 운동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손기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암건강증진센터와 건강증진센터에서 건강노화 클리닉, 간병가족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의학과 간병가족의 건강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저서 로는 『근거 중심의 암생존자 관리』가 있다. 오범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임의로 재직하였으며, 건강증진센터 진료교수를 거쳐 현재 보라매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진료 및 건강검진센터 판정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미국 엠디앤더슨병원에서 암 환자의 완화 의료, 암 생존자의 건강관리에 관한 단기 연수 후 암 환자의 건강 유지와 삶의 질 향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이 책의 목차 Part 1. 암 료 후 건강관리법은 따로 있다 - 암은 이제 '생존하는 질병'이 아닌 '경험하는 질병' 암 경험자 100만 명 시대! 암 완치율, 생각보다 더 놀랍다! 암은 이제 평생 관리하며 함께 살아야 할 만성질환과 같다 - 장기 생존으로 가기 위한 관문, 료 후 5년 진짜 료는 지금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체계적인 건강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맡아줄 주치의가 필요하다 - 암 료 후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인 암 료가 끝난 암 경험자의 사망 원인 3대 위험 요인을 관리하라 - 건강한 생활습관은 또 다른 항암치료다 암 경험자의 건강은 생활습관이 좌우한다 생활습관은 암에도 영향을 미친다 암 경험자가 지켜야 할 건강 생활습관 Special page. 암 료 후 직장으로 복귀하기 Part 2. 장기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인을 관리하라 - 장기 생존을 위한 첫 걸음, 암 재발 예방 재발, 막을 수 있을까? 알아 두자, 재발과 전이 증상 조기 발견을 위한 지속적인 추적관찰 재발 관련 기타 주의 사항 - 새로운 암, 이차암의 검진 암 경험자는 새로운 암에 걸릴 확률도 높다 왜 암 경험자가 새로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까? 원발암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암 경험자의 이차암 검진 주요 암종별 이차암 검진 및 예방을 위한 고려 사항 - 암 료 후 더 주의해야 하는 만성질환 암 환자는 암으로 죽지 않는다? 암 경험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암 경험자의 만성질환은 더 위험하다 암 경험자는 오히려 만성질환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 가장 흔한 동반 질환 고혈압 많은 합병증을 동반하는 당뇨병 심혈관질환 위험 요인, 이상지질혈증 여성과 남성 모두 조심, 골다공증 그 외 만성질환 Special page. 암 경험자의 피로 관리 Special page. 암 경험자 가족의 암 관리 Part 3. 장기 생존은 건강한 생활습관에 달렸다 - 가장 중요하다! 무조건 금연 흡연은 암 경험자에게 더 나쁘다 금연은 의지만으로는 어렵다 기꺼이 금연 료 약제의 도움을 받아라 - 매일 한 잔도 해로울 수 있다! 음주 매일 술 한 잔은 건강에 이롭다? 술 한 잔도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정 암 경험자에게는 금주가 필수다 술은 끊는 게 최선이다! - 건강의 지표, 적정 체중을 유지하라 암 경험자에게 체중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암 경험자에게 적정 체중은 '생존' 그 자체다! 암 료 후 체중이 증가했다면 어떻게 할까 암 료 후 체중이 감소했다면 어떻게 할까 건강 체중을 회복했다면 근육량을 늘린다 - 항암 식습관이 중요하다! 음식 암 예방에 있어 음식은 중요한 요인이다 단일 음식으로 하는 영양 계획은 피하라 건강식품이나 보충제도 암 경험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료 후 식습관 관리의 목표는 건강 체중 유지에 있다 영양 계획은 Anti-FAT(Food-Amount-Time의 역순)으로 해보자 모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골고루 먹는다 매일 5가지 이상의 과일과 채소를 먹는다 저지방 식사, 이왕이면 당화지수가 낮은 음식을 선택한다 - 장기 생존율을 높여라! 운동 운동이 암 경험자의 장기 생존율을 높인다 암 료 후 나타날 수 있는 불편한 증상을 개선시킨다 암 료 시기별 고려해야 할 것들 암 경험자가 해야 하는 3가지 운동 동반된 질환의 유무에 따라 개인차가 있다 Special page. 암 경험자의 예방접종 Special page. 노인 암 경험자의 건강관리 항암 음식에 관한 궁금증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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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5673&pt=nv, 클릭 1 경향신문이 주관하여 진행한 동북아시아 장정에서 우리는 알타이 산맥부터 몽골 초원을 거쳐 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우리와 닮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말도 비슷하고 풍습이나 믿는 것도 비슷하다. 사실 모든 인류는 한 분의 아버지, 한 분의 어머니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들이다. 우리의 최고 오래된 할아버지는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면 2000세대 전 할아버지다. 어머니는 더 이전인 약 16만 년 전에 역시 아프리카에 처음 나타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연히 좀 더 강해지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나서, 이 할아버지, 이 할머니의 후손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 이론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인데, 지금은 정설이 되었다. 전에는 소위 ‘다지역 기원설’을 믿어왔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이고, 중국인은 중국 구석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식이다. 지금 이 구석기 문화를 만든 곧선사람은 현생 인류와 다른 멸종된 하나의 ‘인류’로 간주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서쪽부터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중기 구석기의 무스테리안 문화를 만든 주인공인데, 역시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해의 인류가 모두 형제라면 왜 그렇게 다른가? 흑인, 백인은 실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답은 과거 6만 년 동안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달랐고,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살다보니 가장 잘 적응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태양빛이 강하게 내려쬐는 아프리카에서 살아남으려면 피부가 검어야 하고, 햇빛이 약한 온대지방에서는 좀 희어야 건강에 좋다(가령 비타민 D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추위에 잘 적응한 동북아 인류 한편 우리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특징은 추위에 적응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가령 골프 선수 최경주의 눈처럼, 좌우로 가늘고 긴 모양은 하나의 특징인데 눈을 혹독한 추위로부터 보호해준다. 이 체질이 만들어진 곳은 어디였을까? 필자는 바이칼 호 주변이라고 주장해왔다. 언제 이 체질이 형성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에서 1만8000년 전까지 이어진 마지막 빙하기 기간이어야 말이 된다. 상당히 오랜 기간 추운 곳에서 살아야 그 추운 환경에 맞는 체질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실제 이 시기, 이 바이칼 지역에 사람들이 계속 살아남았던 증거도 많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친아버지·어머니를 알아낼 수 있고, 친할아버지·할머니도 알 수 있다. 범죄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DNA 검사가 이것이다. 아버지(남자) 쪽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염색체 Y의 유전자를 검사한다. Y 염색체는 아들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모계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조사한다. 이 유전자는 어머니에서 딸에게만 전해진다. 많은 학자가 세계 각처 사람들의 이런 유전자를 조사해서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6만 년 전 200여 명의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 남부 해안으로 건너갔고, 이들의 후손이 해안을 따라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남방 해안 루트). 약 5만 년 전에는 지중해와 중앙아시아로 들어가고,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로도 퍼져 사는데, 그 일부가 시베리아를 거쳐(북방 루트), 빙하기가 끝나는 1만5000년 전 미 대륙으로 건너간다. Y염색체 유전형을 보면 북방 루트를 통해 온 사람(특히 남성)이 동아시아인의 주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동아사이의 거의 모든 사람은 O형의 Y염색체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 O형은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 많은 N*의 후손 유전형으로,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여러 섬,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태평양 해안 사람에 많은 C, D형과는 촌수가 상당히 멀다. 특히 말레이 반도에 사는 안다만 섬 사람(초기에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로 간주됨)이 D형인 것은 이 형들이 남방 루트로 이동한 형이라는 것에 확신을 준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Q형도 O형의 사촌쯤 되고, 중앙아시아가 그 기원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인의 약 4분의 1은 남방형의 C, D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4분의 3은 북방계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유전인류학의 발달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향토박물관에 전시된 유골. <김문석 기자> 여자들의 족보를 알려주는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의 분포는 아주 복잡하지만, 최근 러시아 유전학 연구소와 필자 등이 공동연구에서 아시아 지역의 미토콘드리아 유전형들이 거의 전부 남방 루트로 이동한 여성들의 것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알타이 산맥 이서의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부까지 거의 모든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N*인데,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인들은 M*와 N*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아프리카 흑인은 L*을 가지고 있다(*가 붙은 것은 후손이 되는 유전형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N*에는 A, B, F, H, I 등이 있다). 그런데 이 N* 중에서 동아시아에 있는 A, B, F는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요약하면 동아시아 여성들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거의 전부 남방 해안 루트를 거쳐 이동해온 사람들 것이고, Y 염색체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를 거쳐 내려온 남자들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북방계 남자가 남방계 남자를 몰아내고 남방계 여자들을 취하여 후손을 불려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그 유전자 구성에서 한국, 중국 북부, 일본인이 모두 같다. 흑해에서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을 거쳐 바이칼 호 부근에 이르는 지역은 중기구석기 문화에 이어 세형몸돌, 세형돌날로 대표되는 후기 구석기 문화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필자는 이 후기 구석기 문화를 추운 지방에 정착하여 적응한 체질을 가진 북방계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바 있지만, 이들은 약 1만5000년 전에 시작된 지구 온난화로 주변의 빙하가 녹으면서 주변으로 이동하여 일부는 미 대륙으로 들어가고(미국 원주민이 된다), 일부는 남하하여 동아시아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이때 동아시아에 신석기 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북방계 사람들과 남방계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주역 답사팀은 발해 문화의 중심지 연해주부터 바이칼 지역, 몽골, 만주를 거쳐 고조선 문화의 중심지(?) 내몽골 요하 유역의 홍산 문화를 돌아보았다. 연해주 아무르강 지역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3000년 전 토기 문화는 바이칼에서 동북아시아 전역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내몽골 황하지역에 이루어진 오르도스 문화를 포함하여 동북아 문명이 이렇게 남북계 사람들의 만남으로 형성되지 않았을까? “아득한 옛날, 천상 세계를 다스리는 상제(환인)에겐 환웅이란 아들이 있었다. 그는 매양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의 세계를 다스려보려는 욕망을 품어오곤 했다. 환인은 그 아들의 뜻을 알아챘다. 그러곤 아래로 지상의 세계를 굽어보았다. 아름답게 펼쳐진 산과 강과 들, 그 가운데서 삼위태백이란 산, 그곳이 널리 인간을 다스려 이롭게 할 만한 근거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 환웅에게 직권을 부여하는 천부인 세 개와 부하들을 주어 지상에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이 단군신화는 바이칼에 살았던 북방계 통치자가 남쪽으로 길이 열리자 아들을 보내 남방계 원주민을 다스리게 한 역사가 아닐까? <이홍규|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 소개 > 명예교수 > 이홍규 교수의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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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창설 및 창설 초기(1955년 - 1970년) 광복 전후의 시기부터 한국 전쟁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마취는 외과계 각 과의 초급조교에 의하여 실시되었으며 마취방법은 대부분 국소침윤 또는 척추마취였고, 전신마취는 에테르(diethyl ether)를 사용한 개방점적식 마취법을 사용하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취과학 강의로는 외과 총론 중 1시간이 배정되었고 강의내용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수기를 다룬 정도였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의 마취과학에는 비록 초보적이기는 하나 비교적 근대적인 마취방법이 도입되었는데, 전쟁 중 한국 군의관들(부산의대 김인세, 가톨릭의대 정운혁, 연세의대 오흥근 등 28 명)이 미국 마취군의관들로부터 2 주간 마취과 교육을 받은 이후로 근대적인 마취방법이 시작되었다. 1955년 마취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국제협조처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외과의 이동식 선생을 마취과 전공요원으로 미네소타대학에 2년간 파견하였으며, 1956년 1월 31일 마취군의관 William Evans 대위에 의하여 의과대학에서 마취과학의 첫 강의 이후로 1956년 2월 7일 처음으로 기관내 삽관을 이용한 전신 흡입마취법으로 직장암과 위절제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다. 한편, 대한마취과학회는 1956년 11월에 창립되었으며 1957년 대한의학협회의 분과학회로 인정되었고, 1958년에는 세계마취과학회에 가입하였다. 1958 년 1월 에는 외과에 소속되어 있었던 마취실을 분리하여 의과대학에 마취과학교실을 신설하고 전임강사인 이동식 선생을 초대 마취과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마취과학 강의도 시작하였으며 마취를 위한 장비로 Ohio anesthesia machine (5대), nitrous oxide E, G cylinder (각 20개), cyclopropane D cylinder (10개), suction (10대), recovery cart (10개), Ohio oxygen administer, oxygen tent, Van Bergen respirator, Dinker's respirator, Bennet respirator, rocking bed 등을 구입하고, d-tubocurarine, succinylcholine (Anectine®), gallamine (Flexedil®) 등의 근육이완제를 비롯하여, 기관내 튜브, 흡인 카테터, 기도유지기, 후두경 등 미화 약 5만 불 가량의 장비를 도입하여 마취 시설과 회복실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부속병원 마취과에는 1957 년 미국으로부터 귀국한 이동식 선생이 있었을 뿐 인원이 부족하였으므로 외과로부터 의사를 파견 받아 수술환자의 마취를 담당하게 하였다. 1957년 9월 에 미네소타 대학의 마취과학 부교수인 James H. Matthews가 의학자문교수의 자격으로 2년간 병원에 상임으로 근무하게 되어 본 교실의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하였다. 1957년 11월에는 1956년 1월부터 5개월간 미국 텍사스 소재 Broke Army Hospital에서 마취과학을 연수한 곽일룡 선생이 입국하여 마취과학교실 최초의 무급조교로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58년 7월에 곽일룡 선생이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그리고 수개월 후에는 이화영 선생이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각기 수련받기 위하여 도미하였다. 1959년 에는 straight intern 제도가 실시되어 박경민 선생, 이원호 선생이 최초의 전공의로서 입국하였고 1960년에는 김석규 선생이 입국하였다. 1961년에는 straight intern 제도가 폐지되고 전문의 수련을 위한 군 입대 연기제도인 Kim's plan에 의해서 rotating intern으로서 김광우 선생이 입국하였고 그 후 이 제도에 따라 많은 동문들이 입국하였다. 1963년에 국민의료법 및 동 시행세칙(법률 제 221호)의 규정에 따라 전문과목 표방허가 자격시험과목에 마취과목이 포함되게 되었으므로 1963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의시험이 시행되어 마취과 전문의가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 대에는 마취과에 전공의 지원자가 적어 진료상의 애로사항이 많았으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부속병원 집행부의 양해 하에 외과의 협조로 마취과 전공의에게는 비공식적인 특전을 베풀게 되었다. 즉, 마취과 전공의의 경우 4년의 수련기간 중 전반 2년의 마취과 수련을 받고 나면 후반 2년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외과 각과의 외과수련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주도록 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특전을 통해 마취과에서 외과로 전과한 경우도 몇 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1970년대 이후에 마취과의 전공의 지원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1962년 에 이화영 선생이 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근무하였으나 1965년에 사직하였고, 1965년 7월에 박경민 선생이 전임강사로 마취과에 발령받았다. 1966년 9월에는 처음으로 이동식선생이 가톨릭의대 정운혁 선생과 함께 제 2회 아세아 오스트레일리아 마취과 학회에 참석하여 저체온 부문의 좌장을 맡았다. 1969년 7월에는 처음으로 신장이식 수술의 마취를 시행하였다. 이동식 교수 재직 시의 전신마취는 thiopental, succinylcholine (Anectine®), ether, d-tubocurarine, gallamine (Flexedil®), nitrous oxide, oxygen을 이용하여 조절호흡을 하였으며, 소아의 경우 cyclopropane을 사용하였다. Methoxyflurane과 propanidid (Epontol®)를 이용한 정맥마취도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1960년에 axillary block이 시도되었고 1962년에 halothane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척추마취 시에는 procaine, tetracaine (Pontocaine®), neperucaine 등의 국소마취제를, 국소침윤용으로는 procaine과 lidocaine (Xylocaine®) 등을 사용하였다. 근육이완제의 가역제로는 neostigmine, edrophonium (Tensilon®)과 atropine을, 승압제로는 adrenaline, noradrenaline, aramine, ephedrine 등을 사용하였고, 개심술시 저체온법도 도입되었다. 당시 마취과에 근무했던 인원은 교수가 2명, 거의 무보수로 근무하였던 전공의가 2명이었고 수술실이 4개, 회복실에 침대가 10대, 간호사가 2명 근무하였다. 부속병원 마취과의 초창기에는 한국 전쟁 후 군에서 마취보조 간호장교로서 많은 경험을 쌓고 제대한 박명자 간호원이 마취회복실 수간호원으로서 마취과 선생들을 음양으로 도왔으며 수술장 및 회복실의 간호일선에서 오랫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마취과의 독립 이후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심장과 폐 수술, 뇌수술 등이 시작되고 수술 후 회복과정 등에 관여하면서 마취과의 중요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였으며 incubator, warm mattress, oxygen tent, Ohio pediatric circle system 등이 도입되어 소아수술도 시작되었다. 회복실에서 외과계나 호흡기계 중환자 료와 소아마비, 파상풍, 뇌염 등 내과환자의 인공호흡 관리도 시도되었으며 마취 특진제도 허용되게 되었다. 심폐소생, 장기 호흡관리, 응급외상의 마취, penicillin anaphylactic shock 등을 경험하였다. N2O 가스의 공급이 여의 않아 서울공대 화공과 이기선 교수에게 부탁하여 이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N2O 가스가 생산되어 자체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65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CO2 absorber를 사용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central piping system으로 가스가 공급되기 시작되었으며 5개의 수술실과 1개의 방광경실을 운영하며 마취를 담당하였고 마취 중 감시는 혈압, 맥박수, 정맥 절개법(venesection)에 의한 중심정맥압 측정을 하였으며 심전도감시는 심장 수술에만 시행하였다. 1967년 에 당시 마취과장이었던 이동식 조교수가 말레이시아의 말레야(Malaya)대학에 근무하기 위해 휴직하였으며, 후임 마취과장으로 박경민 조교수가 근무하였으나 박경민 마취과장도 미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1969년 7월에 사직하였다. 하지만 그 직전인 1969년 3월에 곽일룡 선생이 조교수로 발령을 받았으며 곧 이어 김광우 선생이 전임강사로 마취과에 근무를 하게 됨으로써 마취과의 교수 부족 상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곽일룡 선생은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3년간 마취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전남대학 및 한일병원에서 마취과를 창설하였으며 본 대학 외래조교수로 임명되었다가 1969년에 조교수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마취과 전공의는 매년 1-3명씩 지속적으로 입국하여 연차별 전공의 교육이 가능해졌으며, 1969년부터 마취과 전공의 수련 기한이 2년에서 4년으로 바뀌었고 김용락, 신광일 선생이 4년 수련 과정을 이수한 첫 마취과 전문의가 되었다. 이 시기의 마취과 의사들은 각 외과의들의 마취에 대한 무지와 편견, 마취과 의사에 대한 비협조 그리고 절대적인 인력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근무를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이동식 선생, 이화영 선생, 박경민 선생 등이 중도에 사직을 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마취과의 초창기에 이동식 선생, 이화영 선생, 박경민 선생 등의 헌신과 노력이 오늘날 마취과의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시기에 시행된 수기 및 주요 약제의 도입을 살펴보면 1967년경부터 쇄골하정맥 삽관술이 처음 시술되었으나 1986년경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고, 마취약제로 에테르는 1959년부터 사용되었으며, halothane은 1962년경에 처음 도입되어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마취 전처치제로는 1960년부터 atropine과 meperidine (Demerol®)을 사용하였는데 meperidine은 1974년 경까지 전처치제로 많이 사용되었다. 1970년에 전신마취 2,039례, 부위마취 1,158례, 국소마취 248례, 총 3,445례의 마취시행 횟수를 기록하였다. 발전기(1971년 - 1989년) 1970년 서울대학교에서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임상 각 과장을 최초로 임명하여 곽일룡 선생이 마취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72년 3월 1일에 이르러 곽일룡 선생이 초대 마취과학교실 주임교수로 임명됨으로써 마취과학교실은 명실상부한 독립 교실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72년 에는 김용락 선생이 마취과 조교로 입국하여 1975년 3월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김용락 선생은 1978년부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병원 마취과에서 연수 중 국내 최초로 국제학술지인 Anesthesiology에 2편의 연구논문을 게재하였으며, 이 중 한편은 1979년도 ASA annual meeting의 resident contest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김광우 선생은 1972년부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 마취과에서 연수를 하고 FACA (Fellow in American College of Anesthesiology) 자격을 취득한 후 1974년 8월 에 귀국하였다. 김광우 선생의 귀국은 한국에 성인성 호흡곤란증후군(ARDS)의 개념을 도입한 계기가 되었고, 이때부터 동맥혈 가스분석기가 마취과에 도입되면서 환자의 호흡관리 및 중환자관리를 마취과의사가 주도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1974년에 마취과학교실에 대학원과정(석, 박사)이 개설되었는바, 그 이전에는 외과학교실에서 학위과정을 이수하였다. 1978년에 이건일 선생이 교수요원으로 들어왔으나 미국으로의 이민을 위해 1979년에 퇴직하였고, 마취과학교실의 발전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교수요원의 충원이 이어져 1979년 9월 1일 국내 최초의 전임의사제도에 의해 김성덕 선생이, 그리고 1980년에 전임의사로 함병문 선생이 근무하기 시작한 후 각각 그 이듬해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으며, 1983년에 고홍 선생, 1985년에 오용석 선생, 1986년에 이상철 선생, 1987년에 김종성 선생, 1989년에 이국현 선생이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본 교실의 발전을 위하여 근무하였다. 1975년 도의 마취는 전신마취 3,006건, 척추마취 1,281건, 부위마취 17건으로서 6개의 수술실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마취는 흡입마취제로 halothane과 nitrous oxide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주요한 감시 장비로 심전도 감시 장치가 불과 1대 보유 중이어서 환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방법은 극히 미진하였다. 1978년 도에 완공된 신축병원에는 16개의 중앙수술실, 2개의 방광경실과 4개의 산과수술실 등을 갖추게 되었고 아울러 새로운 환자감시장 및 수기들이 도입되면서 마취진료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수술실 수에 비해 마취과 의사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수련과정에 있는 인턴이 마취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인턴의 마취 참여는 현재까지도 지속되어 오고 있다. 또한 이때 김광우 선생이 초대 수술부장으로 임명되었고, 신설된 호흡기계 중환자실을 마취과에서 운영하여 오늘날 서울대학교병원의 각종 중환자실의 운영요원을 양성하였고 중환자관리의 질적 향상을 주도하였다. 1984년 곽일룡 선생은 대한구급의료학회 회장에 피선되었고, 1986년 7월 16일부터 김광우 선생이 주임교수 및 마취과장으로 취임하였다. 1986년 9월에 홍콩에서 개최된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회에서 곽일룡 선생이 회장으로 피선되었고 이때에 김광우 선생이 '1990년도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술대회'의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90년에 아오학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주도하였다. 1984년 11월 부터 심폐소생술(CPR)팀이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1985년 12월에는 그동안 11층에 위치해 이용이 불편하였던 마취과교수실 및 의국이 본관 2층으로 이전하였다. 1985년도에는 수술실 5실이 증축되어 21실의 수술실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수술시행 건수도 많이 증가하여 1985년도에 전신마취 10,935례, 척추마취 1,459례, 국소마취 4,480례를 시행하였다. 1985년 10월 15일 국내 최초의 대학병원부속 소아병원이 개원하면서 소아마취분과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으로 김성덕 선생이 부임하게 되었고 본원 근무 교수 중 1명이 순환으로 소아마취분과에 근무하면서 8개의 수술실에서 이루어지는 마취를 담당하였으나 1989년 11월 부터 김종성 선생이 소아병원에 고정 근무하게 되었다. 1986년 2월 3일 소아병원의 수술실에서 처음으로 소아수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3일부터 11월 2일 사이에 미국 Sandpoint에서 거행된 '소아 및 신생아 중환자에 대한 심포지엄'에 김성덕 교수가 참석한 이후 소아 중환자관리시 폐내진동환기법(IPV: intrapulmonary percussive ventilation)을 도입하여 소아중환자의 수술 후 폐합병증의 빈도는 물론 수술 후 소아 중환자실에서의 체류 일수를 경감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1987년부터는 그간 소아환자에게 고통을 주던 근육주사에 의한 마취전처치법을 완전 배제하고 경구용 마취전처치제인 D-syrup (diazepam 0.6 mg/ml)을 개발해서 소아에게 사용하여 큰 효과를 보았으며, 소아수술환자의 중심정맥로 확보시 정맥절개법(venesection)를 시행하던 것을 모두 쇄골하정맥이나 내경정맥을 이용한 중심정맥 삽관술로 대체하여 시행하였다. 1988년 3월 17일 소아병원에서 국내 최초의 뇌사자의 간을 제거하여 간이식마취를 성공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바야흐로 90년대 이후 장기이식의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마취영역의 장을 열게 되었다. 마취과 교수들의 세부전공분야는 1987년도부터 나누어지게 되었다. 김광우 교수가 중환자관리 및 노인마취, 김용락 교수가 심장마취 및 부위마취, 김성덕 교수가 소아마취 및 폐병태생리, 함병문 교수가 심장마취, 고홍 교수가 산과마취, 오용석 교수가 뇌신경마취, 흉부마취 및 수술 후 통증치료, 김종성 교수가 소아마취, 이상철 교수가 통증치료, 이국현 교수가 이식마취를 담당하였다. 마취기록지는 오용석 선생에 의해 1989년 3월에 소아 마취기록지가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 성인 마취기록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본원에서 A, B, C, D 4개의 rosette으로 구분하여 전공의들이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3월부터이다. 이 시기의 마취과학 분야에서 주요 수기 및 약제의 도입을 살펴보면 1974년에 요골동맥삽관에 의한 혈압측정을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동맥혈가스분석을 시행하여 환자의 진료에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최초의 요추부 경막외마취는 1979년 제왕절개술시 시행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hanging drop method를 주로 사용하다가 그 후 loss of resistance 방법 등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1987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오늘날 산과마취 및 기타 부위마취 또는 통증치료 등에 널리 시행되고 있다. 1979년경부터 Swan-Ganz catheter에 의한 폐동맥 삽관술이 시술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수기의 본격적인 사용은 1986년부터였다. 또한 1979년부터 COP (colloid oncotic pressure)의 측정이 이루어졌다. 1982년경부터 유도저혈압마취 방법이 도입되었고, 1984년 1월 12일 개심술 마취 3,000례를 기록했다. 또한 1986년경부터 중심정맥관 삽관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Seldinger technique에 의한 중심정맥 카테터 삽입술이 본원에서도 도입되어 외과의에 의한 환자의 정맥절개법(venesection)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경정맥 삽관술을 시도하여 어렵게 성공하였으나 차차 쇄골하정맥 삽관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중심정맥 삽관술이 시행되어 현재에는 전공의들도 숙련되고 안전하게 중심정맥 삽관술을 시술하고 있다. 이 시술에 사용된 catheter도 처음에는 single lumen catheter만 사용하다가 1991년 초부터 triple lumen catheter, 1992년 초부터 double lumen catheter를 사용하였다. 1986년경부터 flexible fiberscope에 의한 기관내 삽관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당시는 flexible fiberscope가 마취과에 구비되지 않아 내시경실의 굴곡성 내시경을 이용하였으나 1988년 12월 29일 마취과용의 flexible fiberscope (Olympus 제품, ENF-10)가 구입되어 본격적인 flexible fiberscope를 이용한 기관내 삽관과 전공의 수기교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1989년부터 신경외과환자에서 요추부 뇌척수액 배액술, 성인에서 최초의 DHCA (deep hypothermic circulatory arrest)의 적용, 1990년에 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의 시행, thoracic epidural anesthesia (최초는 1989년경), Robertshaw tube를 이용한 일측 폐환기 (Carlen's tube 도입은 1970년대), High frequency jet ventilation, Cell saver를 비롯한 자가수혈법의 사용, 모든 수술실에 인공호흡기를 도입하는 등의 많은 발전이 있었다. 주요 마취약제의 도입 상황을 살펴보면 enflurane (1975년), pancuronium (1975년), thalamonal (1977년), isoflurane (1983년), fentany (1987년), vecuronium (1987년) 등이 이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마취전처치제로 1974년경부터 atropine과 diazepam (Valium®)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81년경에 glycopyrrolate (Robinul®)를, 1985년부터는 lorazepam (Ativan®)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심혈관계약물로서 nitroprusside와 dopamine은 1970년대에, phenylephrine은 1983년에, dobutamine과 nitroglycerine은 1986년에 도입되었고, racemic epinephrine이 1987년에 도입되어 폐내진동환기법에 사용되었다. 도약기 (1990년 - 1999년) 1990년 아세아-오세아니아 마취과학술대회(회장: 곽일룡 교수, 조직위원장: 김광우 교수)를 서울 힐튼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1990년 10월 부터 통증치료를 시작하였으며, 1991년 9월 2일 통증진료실이 개설되어 통증환자에 대한 외래진료가 시작되었다. 통증진료실의 초대실장은 김광우 교수였으며, 1992년 1월부터 이상철 교수가 실장을 맡게 되었다. 1991년에는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시립영등포병원이 보라매병원으로 확장 개원하게 됨으로써 마취과 전공의의 파견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2년 4월 15일에는 김광우 교수가 서울대학교병원의 제1진료부원장에 취임하였고 1992년 7월 16일에 김용락 교수가 과장 및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한편 1992년 7월에는 뇌사자의 간을 절제하여 간의 일부분만을 이식하는 수술의 마취를 시행하였다. 1993년에 과병원이 새로운 건물로 확장 이전하면서 과진료부 내에 구강마취과가 새로 개설되어 염광원 교수가 초대 과장 및 주임교수로서 근무하게 되었다. 1994년 3월에 심장이식 수술의 마취를, 1996년 9월에는 폐이식 수술의 마취를, 1997년에는 심장-폐 이식술의 마취를 각각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1995년 이후에는 마취과전문의의 세부전공별로 연구회가 창립되기 시작하였으며 본 교실의 여러 교수들이 회장 등의 중요 직책을 맡아 연구회의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대한뇌신경마취연구회가 창립되어 오용석 교수가 총무이사에 이어 1997년 2월부터는 부회장을 맡게 되었고, 1996년 3월 김성덕 교수가 새로 창립된 대한소아마취연구회의 초대회장에, 5월 오용석 교수가 대한정맥마취연구회의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1월 김용락 교수가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에 피선되었고 1997년 임기를 마친 후 다시 이사장에 피선되었다. 1997년 1월 함병문 교수가 대한심폐혈관마취연구회 초대회장을 맡게 되었다. 1998년 10월부터 2년간 김성덕 교수가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직을 수행하였으며, 학회 임원진으로 함병문 교수가 간행이사, 오용석 교수가 보험이사 업무를 수행하였다. 1999년 7월 대한호흡관리학회가 창립되어 함병문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게 되었다. 1996년 2월 곽일룡 교수가 정년퇴임하였으며, 1996년에는 도상환 선생과 박재현 선생이 기금전임강사로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1996년 4월 김광우 교수가 세계 마취과학회의 집행위원으로 피선되었고 1997년 3월에는 대한의학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96년 7월 16일 김성덕 교수가 주임교수 및 마취과장으로 취임하였고 1996년 7월 20일부로 김종성 교수가 소아마취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김성덕 교수가 본원 수술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도상환 선생은 1997년 9월 전임교수로 새로이 발령을 받았다. 또한 1998년 3월에 김희수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1999년 4월에 임영진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었다. 1998년 3월 김종수 선생이, 1999년 3월 민성원 선생이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 임용된 교수들의 세부전공 분야는 도상환 교수가 부인과 및 정형외과마취, 박재현 교수가 심폐마취, 임영진 교수가 정형외과 및 이비인후과마취, 김희수 교수가 소아마취로 구분되어 각 분야별로 진료 및 연구에 정진하였다. 또한 이제까지 외국에 나가서 선진의료를 배워오기만 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90년대 들어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선진의료 습득을 위해 연수를 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본 교실에도 1992년에 연변의대의 마취과 주임의사인 엄상묵 교수가 1년간 장기연수를 실시하였으며, 1995년 11월에는 역시 같은 연변의대의 조용철 교수가 1년간 장기연수를 시행한 바 있다. 또한 국내 마취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각종 연수교육 및 심포지엄을 실시하였다. 1993년 7월 의학연수원에서 "통증치료 1993"이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실시하였고, 1994년 7월에는 의학연수원에서 본 교실의 주관 하에 "Management of difficult airway"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1995년 3월 25일 의학연수원에서 "장기이식 환자의 마취관리"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1995년 5월 6일 "뇌신경마취" 연수강좌를, 1996년 2월 24일 곽일룡 교수 정년퇴임 기념 심포지엄을, 1997년 5월 17일 의학연수원에서 "산과마취의 실제"라는 주제 하에 연수교육을 실시하였다. 1996년 12월, 1997년 3월, 1997년 12월 , 1998년 2월에 총 4회에 걸쳐 본 교실 주관 하에 통증 연수교육을 실시하였다. 매주 토요일 증례토의된 내용을 오용석 교수가 주관이 되어 편집하여 92, 93, 94년 "서울대학교병원 마취증례집"으로 발간하였으며 이 책자는 다른 병원의 의사에게도 판매되어 마취를 전공하는 의사들의 환자관리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1997년 7월부터는 인터넷에 본 교실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세계화에 발맞추는 마취과의 위상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6년 9월 부터는 오용석 교수가 수술 후 환자들에게 IV-PCA (intravenous patient-controlled analgesia)를 이용한 통증치료를 시작하여 환자 및 외과 의료진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수술 후 통증 료 약제를 준비하는 전담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1997년 7월에 본원의 수술실이 4실(E 로젯) 추가되면서 마취과 전공의의 업무가 과중해져 이에 도움을 주고자 각 로젯마다 한 명의 정규 간호사를 마취간호사로 배정하여 마취과 의사의 업무를 보조하도록 하였다. 또한 1997년 8월 4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마취과 외래(수술전 평가실)를 개설하여 환자의 수술전 평가를 외래 수준에서 시행함으로써 마취과의 진료수준 향상을 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98년 12월 5일 에 본교실의 창설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의학연구소 강당에서 개최하여 국내외에서 다수의 연자를 초청하여 대다수 마취과 동문들의 참석하에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또한 2년여의 준비 끝에 ‘서울대학교 마취과학교실 40년사’를 발간하여 본 교실의 과거 역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자료로 삼게 되었다. 1999년 한 해는 서울대학교병원 마취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던 마취과의 원로 교수 두 분이 지병으로 인해 타계하신 해였는바, 김광우 교수께서 5월 9일 63세로, 곽일룡 명예교수께서 8월 8일 68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한편 김성덕 주임교수에 의해 국내에서 최초로 소아마취 지침서인 '임상소아마취'가 1999년 3월에 발간되었고, 1999년 5.26일 부터 4일간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된 제16차 한일합동 심포지엄 및 제46차 일본 마취과학회에 김성덕 교수, 민성원 교수, 이가영 선생 등이 참석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삿포로의 Royton호텔에서 개최된 제16차 한일 심포지엄에서 김성덕 교수가 한국을 대표해 축사를 하였고, 한일 마취과학 발전에 공이 컸던 고 김광우 교수에 대한 참가자의 묵념과, Namiki 일본학회장의 조사, 그리고 고 김광우교수에 대한 명예회원증을 수여 받았다. 1999. 6. 7. 의과대학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호흡생리 강의에 마취과 김성덕 교수가 처음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로 약리학 등 기초의학 분야의 학생강의에 마취과 교수가 강의를 지속하여 옴으로써 마취통증의학을 학생들에게 조기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1999년 7월 13일 에는 대한의학회(회장: 지제근) 이사회에서 마취과의 표방 전문과목명을 “마취통증의학과”로 변경하는 안이 전격적으로 통과되었으며 한 달 후인 1999년 8월 27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유성희) 상임이사회에서도 똑같은 명칭 변경 안이 통과되어 표방 전문과목의 명칭 변경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한편 1999년 10월 15일 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전자처방(OCS)이 도입되었으며, 1999년 11월 5일 제44차 대한마취과학회 종합학술대회에서는 학회에서 처음 실시하는 전공의 자율평가 우수자에 대한 시상에서 4년차 윤희조 선생이 년차 최우수자로 표창을 받았고, 노영진 교수가 마취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12월 에 김성덕 교수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소아마취 전문잡지인 'Paediatric anaesthesia'의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국제학술논문의 교정활동에 참여해 오고 있다. 마취과학의 발전영역이 넓어짐과 동시에 외과계와의 협조를 긴밀히 한다는 차원에서 수술부장을 마취과 교수로 임명하였는데, 초대 수술부장으로 김광우 교수가 임명된 이래 2대에 김용락 교수, 3대에 함병문 교수, 4대에 고홍 교수, 6대에 김성덕 교수가 계속하여 수술부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새로운 마취약제 및 수기로는 labetalol (Trandate®)이 1990년에, propofol이 1992년에, midazolam이 1992년에, sufentanil이 1996년에, rapid infusion system이 1993년에, transesophageal echocardiography가 1994년에, thromboelastography가 1996년에, IV-PCA가 1996년에 각각 도입되었다. 1990년의 마취 건수는 본원에서는 전신마취 8,732, 부위마취 2,225, 국소마취 7,538, 응급수술 857 이었으며, 소아병원에서는 수술건수가 4,484건 이었다. 1995년의 마취 건수는 본원에서는 전신마취 12,991, 부위마취 2,581, 국소마취 5,180, MAC 1,820, 응급수술 3,512건 이었으며, 소아병원에서는 수술건수가 5,019건 이었다. 21세기, 새로운 시작 (2000년 - 2008년) 2000년 4월 15일 대한척추통증연구회가 창립되어 이상철 교수가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6월 30일 아시아-태평양 호흡관리학회(조직위원장: 함병문 교수)를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2000년 7월 김성덕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에 재임용 되었다. 2000년 9월에는 박재현 교수가 전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1년 3월 안원식 선생이 기금조교수로서 근무를 시작하였고, 노영진 선생이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1년 부터는 국립암센터와의 모자병원협약에 따라 전공의 정원 증가가 이루어졌으며, 국립암센터로 전공의를 파견하여 오고 있다. 2001년 9월 8일 “통증관리” 연수강좌를 본 교실의 주관 하에 실시하였다. 2001년 3월부터 2002년 6월 까지 고홍 교수가 대한산과마취학회 회장을 수행하였다. 2001년 11월 19일 김성덕 교수가 보라매병원 원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2001년 11월에는 함병문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였다. 김성덕 교수는 보라매병원 원장으로서 2006년 11월 까지 4년간 근무하였다. 2002년 2월 에 고홍 교수가 명예퇴직 하였고, 2002년 5월 박종두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2002년 6월 김용철 선생이 전임부교수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한편 표방 전문과목 명칭 변경을 위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어 2002년 3월 30일 자로 표방 전문과목 명칭이 마취통증의학과로 변경되었다. 또한 이 해에는 촉탁교수와 임상교수 제도가 도입되어, 2002년 6월에 4명의 촉탁교수가 본원에 처음으로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였다. 2003년 3월 12일에는 수술부 내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약국이 개설되어 수술환자의 투약업무 관리의 질적 향상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E 로젯에 수술실 2개가 증설됨에 따라, D, E 로젯의 수술 환자를 위한 제2회복실을 신설하였으며, 수술실과 외과계 중환자실간의 전용승강기를 설치하여 수술실과의 접근성을 수월하게 하였다. 2003년 4월에는 윤태균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신규임용 되었다. 2003년 4월 26일 본원 통증치료실이 외래 진료실 2개, 외래 침상수 6개, 시술실 2개로 보수 확장하면서 기존에 일반 수술실을 공유하면서 통증치료를 위한 시술을 시행해야 했던 어려움이 해소되었으며, ‘통증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분당병원이 개원함에 따라 2003년 9월 황정원, 전영태, 이가영, 한성희, 이평복 선생이 분당근무 임상조교수로 근무를 시작하였고, 2003년 10월에는 임영진 교수가 전임교수로 새로이 발령을 받았다. 2004년 3월에는 박금숙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임용되어 근무를 시작하였고, 2004년 4월에는 김경옥, 박희평, 윤미자, 서명신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임상조교수로서 새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2004년 10월에는 김진희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전임교수로 발령 받았다. 2004년 7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마취과장 및 주임교수, 수술부장, 중환자관리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였으며, 후임으로 김희수 교수가 소아마취 분과장 및 소아수술실장을 맡게 되었다. 2004년 이상철 교수가 대한IMS학회의 회장을 맡게 되었으며, 12월부터는 2년간의 대한통증학회 회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4년에 이상철 교수가 World Society of Pain Clinicians의 차기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2005년 2월에는 함병문 교수가 명예퇴직을 하였고, 2005년 4월에는 전윤석 선생과 정철우 선생이 임상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어 본원에서 근무하게 되고, 한성희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신규 임용되었다. 2005년 4월에는 오아영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임상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2004년 10월 15일 EMR (전자의무기록)의 도입과 함께 전자마취기록의 시대가 열리면서, 종이 마취기록지는 수술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2005년 2월부터 목요일 아침 case conference를 본원과 보라매병원간에 화상회의로 진행하기 시작하였으며, 4월부터 분당병원도 합류하여 본원, 분당, 보라매병원 간의 화상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2005년 11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대한마취과학회 차기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2006년도에는 3월 8일 김용락 교수가 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고별강연을 하였으며, 8월 31일에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맞이한 이후 부천 세종병원으로 이직하였다. 2007년부터는 국립암센터와도 화상회의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본원-분당병원-보라매병원-국립암센터의 4개 병원간 화상회의를 통한 증례 토의를 시행해 오고 있다. 2007년 3월에 전영태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7년 1월 15일에 분당병원 과장으로 재직하던 오용석 교수가 퇴직함으로써 2007년 4월부터는 도상환 교수가 새로운 분당병원 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2007년 9월에는 황정원 선생이 분당병원 근무 기금부교수로 임용되었다. 2007년 9월에는 김종성 교수가 소아진료부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후임으로 이상철 교수가 마취통증의학과장 겸 마취과학교실 주임교수, 수술부장 및 중환자진료부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어 10월에는 이상철 교수가 김종성 교수에 이어 연속으로 대한마취과학회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2007년도에는 16명의 1년차 전공의 정원 중 3분의 1에 가까운 5명이 중도 사직함으로써 교실 역사상 최초로 후기모집 전공의 3명을 모집하여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였다. 또한 새로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는 1년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교실의 교수가 멘토를 담당하는 멘토제도를 2008년 3월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2008년 3월 1일부터 의과대학내 교실 명칭이 기존의 마취과학교실에서 마취통증의학교실로 변경이 되었다. 2008년 3월에는 박희평 선생이 전임조교수로, 전윤석 선생이 기금조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보라매병원 근무 기금조교수로 허진 선생이 임용되었다. 또한 3월 18일에는 그동안 대학의학회 부회장으로서 의학발전에 기여해 왔던 김성덕 교수가 대한의학회의 차기 회장에 선출되었다. 2008년 5월에는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위해 수술실 1실(E6)이 증설되어 5월 13일부터 로봇을 이용하는 수술을 위한 마취를 시작하였다. 2000년 마취과에는 전임교수 10명, 기금교수 4명(본원 2명, 보라매 2명), 전임의 5명, 4년차 전공의 7명, 3년차 전공의 8명, 2년차 전공의 8명, 1년차 전공의 11명과 본원과 소아병원을 합쳐 15명의 인턴이 근무하였다. 2000년의 마취 건수는 전신마취 7,604예, 부위마취 10,334예, MAC 12예, 국소마취 6,966예 이었다. 소아병원에서는 4,243예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수술후 자가통증치료는 4,922건, 통증치료실의 외래환자수는 7,227명, 수술장 시술건수는 1,751건, 마취과 수술전 평가실 환자는 1,403명 이었다. 2000년도에 발표된 40편의 논문 중 국내 전문학술지에 32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8편이 발표되었다. 2005년 마취과에는 전임교수 12명(본원 10명, 분당 2), 기금교수 6명(본원 2명, 분당 1명, 보라매 3명), 임상교수 15명(본원 4명, 분당 9명, 보라매 2명), 촉탁교수(본원 6명, 분당 2명), 전임의 12명(본원 8명, 분당 4명)이 근무하였다. 전공의 정원은 본원 9명, 분당병원 3명, 보라매병원 2명, 국립암센터 1명이었으며, 4년차 9명, 3년차 12명, 2년차 14명, 1년차 15명이 근무하였다. 본원과 소아병원을 합쳐 15명의 인턴이 근무하였다. 2005년에 본원은 26개 중앙 수술실, 1개의 방광경실, 2개의 산과 수술실, 1개의 혈관 조영실에서, 소아병원은 8개 수술실에서 시행되는 수술 환자에 대한 마취관리를 담당하였다. 2005년 서울대학교병원 본원에서 마취진료 24,144건 (전신마취 14,372, 부위마취 3,018, MAC 1,868, 수술장 통증시술 4,886건), 국소마취는 4,634건을 시행하였으며, 수술후 자가통증치료는 8,687건 이었다. 소아병원에서는 5,950건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통증센터 외래환자수는 12,369명, 수술전 평가실 환자는 3,158명이었다. 2005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중앙수술실 20개(당일수술실 2실 포함), 분만장 수술실 1개, 혈관조영실 1실에서 시행되는 수술 환자에 대한 마취관리를 담당하였다. 분당병원 마취진료 건수는 17,967건 (전신마취 12,344건, 부위마취 2,815건, MAC 2,808건)이었고 이중 당일수술실을 이용한 환자는 4,935명이었다. 통증치료실은 외래 11,180명, 입원 314명으로 늘어났다. 2005년도에 본원에서는 68편의 논문(국내 전문학술지 43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25편)이, 분당병원에서는 28편의 논문(국내 전문학술지 14편, 해외 전문학술지에 14편)이 전문학술지에 발표되었다. 2007년도에는 23편의 국내 전문학술지 주 연구논문과 27편의 해외전문학술지 주 연구논문이 발표되었으며, 수술전 평가실 외래에서 4,580건의 진료를 시행하였고, 마취 건수는 21,307건(전신마취 15,448건, 부위마취 3,162건, MAC 2,697건)이었으며, 통증센터에서는 23,470건(수술실 료 건수 7,348건 포함)의 시술 및 23,301건의 외래 진료를 시행하였다. 2008년 6월 현재 본원은 전임교수 9명, 기금교수 3명, 임상교수 3명, 촉탁교수 7명, 전임의 7명 등 총 29명의 전문의와 전공의 60명이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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